“미국 중산층 살릴 것… 김정은 같은 폭군에 알랑거리지 않겠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민주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22일 후보 수락 연설에서 “인종, 성별, 언어와 정치적 견해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을 통합하고 상식을 가진 국민을 위해 싸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또 “미국은 해외에서도 변함없는 가치를 추구하고 글로벌 리더십을 강화할 것”이라며 “트럼프에게 아첨하는 김정은 같은 독재자, 폭군과 친하게 지내려고 알랑거리지 않겠다”고 했다.
후보 지명을 정식으로 수락한 해리스는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대통령에 도전하게 됐다. 대선은 ‘해리스 대 트럼프’의 구도로 확정돼 11월 5일 투표까지 70여 일 대장정에 들어갔다. 해리스와 트럼프는 다음 달 10일 첫 TV 토론에서 맞붙는다.
전당대회 마지막 연사로 무대에 오른 해리스는 약 40분 동안 수락 연설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했던 연설(20분)의 2배다. 해리스는 “우리는 과거와 신세계의 갈림길에 서 있다”면서 “다양한 견해를 가진 미국인들이 연설을 지켜보는 걸 알고 있고, 모든 미국인을 하나로 통합하고 경청하며 이끄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지난달 포기하면서 후보직을 승계한 해리스는 “이런 여정을 예상하진 못했지만, 상식적인 미국인을 위해 싸우는 건 법정에서 백악관까지 이어진 내 인생의 과업”이라고 했다.
해리스는 상대인 트럼프에 대해 “그에 대한 형사 기소에 대법원이 면책특권을 부여한 상황에서 그를 다시 백악관에 들이는 건 매우 심각한 일이 될 것”이라며 “트럼프에겐 가드레일(안전장치)이 없고, 그의 유일한 고객은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트럼프 재임 중 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생식권(출산 관련 결정을 자유롭게 내릴 권리)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일을 “정신 나간 짓”이라 표현하며 “대통령이 되면 연방 차원에서 여성의 자유와 선택권을 보장하는 법안에 서명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와 가장 뚜렷하게 차별화된 것은 대외 정책이었다. “트럼프는 미국이 탈퇴하겠다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위협하고, 푸틴(러시아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와 우리 동맹국을 침공하라고 부추겼다”며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강화하고, 우리가 세계에서 강력한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군인과 그 가족의 헌신을 총사령관으로서 항상 존중할 것”이라고 했다.
해리스는 또 “아첨으로 트럼프를 조종하기 쉽다는 걸 아는 김정은 같은 폭군·독재자에게 다가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그동안 유세 때마다 김정은과의 친분을 과시했고 재집권 시 미·북 대화 재개 가능성을 시사했다. 해리스는 “(김정은 같은) 독재자들은 트럼프가 자신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안다. 트럼프 본인도 독재자가 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나는 민주주의와 폭정(暴政) 사이의 투쟁에서 미국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기에 대통령으로서 우리의 안보와 이상을 수호하는 데 결코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해리스는 캘리포니아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경험을 공유하며 “중산층은 나의 출신 배경이고, 튼튼한 중산층을 건설하는 것이 대통령 직무의 핵심 목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고교 시절 계부에게 성폭행당한 친구를 도운 일을 언급하며 “그게 내가 검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이고, 나의 유일한 고객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이날은 해리스와 배우자 더글러스 엠호프의 결혼 10주년 기념일이었다. 해리스는 연설을 시작하며 “축하해, 더기(더글러스의 애칭)”라고 했다. 연설이 끝난 뒤 엠호프가 무대에 올라와 입을 맞추자 청중이 기립 박수로 축하했다. 연설에 앞서 세 살 터울인 여동생 마야도 무대에 올라 “큰언니가 차기 대통령으로서 여러분을 위해 힘을 다해 싸울 거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마야는 열일곱 살에 싱글맘이 됐지만 해리스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고 명문대에 진학해 법조인이 됐다.
해리스가 연설을 마치자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 부부가 무대로 올라왔다. 행사 기간 내내 행사장 천장에 매달려 있던 미 국기를 상징하는 빨강·하양·파랑 풍선 10만개가 쏟아지며 전당대회의 대미를 장식했다. 바이든 대통령 부부도 연설 전에 해리스에게 전화를 걸어 격려했다. 해리스는 “바이든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며 “그가 이룬 업적을 역사가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