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이스라엘에 ‘체면치레 보복’

이란이 1일 오후 늦게 이스라엘에 180여 발의 미사일을 동원한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 지난 4월 13일 무인기(드론)와 순항·탄도미사일 300여 기로 이스라엘을 공습한 지 5개월여 만이다. 약 1시간 동안 계속된 공격으로 이스라엘 전 지역에 공습경보가 발령되고 수백만명이 대피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강력한 ‘다층 방공망’이 정상 가동되고, 미국과 요르단 등이 요격에 가세하면서 이스라엘은 큰 피해를 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지난 수개월간 이스라엘에 계속 ‘보복’을 공언해 왔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 자칭 ‘저항의 축’ 소속 친(親)이란 무장 단체 수장을 잇따라 폭살하고 이들을 궤멸 위기에 몰아넣은 데 따른 것이다. 이란은 다만 전면전 및 확전 부담 때문에 보복 실행을 주저해왔다. 이런 와중에 이스라엘이 1일 레바논 국경을 넘어 헤즈볼라를 상대로 지상전을 시작하자 ‘레드 라인(한계선)’을 넘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중동 전쟁 발발 우려가 커지면서 국제 유가는 한때 전날 대비 5% 이상 급등했다가 2%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이란은 “이스라엘이 도발(재보복)하지 않으면 보복을 끝내겠다”며 자제 의사를 밝혔다. 미국과 국제사회도 “확전은 막아야 한다”며 양국 간 중재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란에 재보복하겠다”고 공언하면서 확전 위기는 계속 고조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일 긴급 경제·안보 점검 회의를 소집해 “이스라엘과 중동 역내에 소재한 우리 국민 철수를 위해 군 수송기를 즉각 투입하라”고 지시했다.

이스라엘군은 1일 오후 7시 30분쯤(현지 시각) 긴급 성명을 통해 “이란이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 수백발을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이란이 탄도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알린 지 1시간 만이다. 이란은 무인기(드론)와 순항·탄도미사일을 섞어 발사한 지난 4월 공습과 달리 이번엔 탄도미사일만 쐈다. 이스라엘군은 곧이어 공습경보를 발령하고 TV와 라디오, 휴대전화를 통해 “시민들은 즉시 방공호로 피신하라”고 알렸다. 미사일은 불과 발사 10여 분 만에 이스라엘 상공에 도달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도 이스라엘의 공습경보 발령 30여 분 만인 오후 8시쯤 “이스라엘의 군사·안보 핵심 시설을 겨냥해 200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혁명수비대는 “이번 공격은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와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 압바스 닐포루샨 혁명수비대 부사령관 살해에 대한 보복”이라고 밝혔다. 하니예는 지난 7월 31일, 나스랄라와 닐포루샨은 지난달 27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공습 명령은 이란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직접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더타임스 등은 “이란이 ‘저항의 축’에 대한 리더십 훼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NYT 등에 따르면 강경파인 혁명수비대 지휘관들은 “더 이상의 인내는 굴욕”이라며 “이란이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면 미사일 공격을 해야 한다”고 하메네이를 설득했다. 온건파인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측이 “이스라엘의 덫에 빠진다”며 반발했으나 하메네이는 장고 끝에 보복 공격을 택했다. NYT는 “’저항의 축’과 신뢰를 회복하고, 이란과 그 동맹 세력이 약해졌다는 인식을 뒤집으려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란의 미사일 공격은 1시간 10여 분간 지속됐다. 인접국인 레바논과 요르단, 시리아 등에서도 이란발(發) 미사일이 목격됐고, 이 중 상당수가 이스라엘의 다층 방공망에 요격됐다. 미국도 즉시 이스라엘 지원에 나섰다. 백악관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동 주둔 미군에 ‘이스라엘 방어를 지원하고 이스라엘을 겨냥한 미사일을 격추하라’고 지시했다”고 발표했다. 요르단 공공안전부도 “우리 영공으로 날아든 (이란) 미사일을 요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오후 8시 40분쯤 공습경보를 해제하고 “이란이 180여 발의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상당수가 격추됐다”고 발표했다. 또 “이스라엘 중부와 남부에 일부 타격이 있으나 사망자는 없다”며 “이스라엘의 피해는 경미하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매체들은 “다만 미사일 파편으로 서안 지구의 팔레스타인인 1명이 사망하고, 텔아비브의 이스라엘 민간인 2명이 가벼운 부상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발표와 달리 이란 국영 TV는 “발사한 미사일의 80%가 목표물에 명중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란 혁명수비대의 극초음속 ‘파타’ 미사일이 처음 실전에 사용됐다”며 “이스라엘의 F-35 스텔스 전투기 20대가 파괴됐다”고도 했다.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이란에선 군중이 모여 밤하늘의 미사일 궤적을 바라보며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을 축하하는 집회를 열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무장 단체 하마스는 “순교자들의 피에 보복하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영웅적 미사일 공습을 축하한다”는 성명을 냈다.

이스라엘은 즉각 보복을 예고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내각회의에서 “이란이 큰 실수를 했고, 그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선언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수석 대변인도 “우리가 선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행동(보복)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영국 가디언은 “이란의 공습 표적에 도심 인구 밀집 지역이 포함돼 이스라엘이 이를 ‘선전포고’로 간주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매체들은 “수일 내 이란의 석유 생산 시설과 핵 시설을 타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스라엘은 앞서 지난 4월 이란의 공습 5일 후 이란 이스파한의 군 기지를 공격했다. 나탄즈 우라늄 농축 시설 등 이란의 핵 개발 시설 바로 옆이다.

이스라엘이 전면적 보복에 나설 경우 이란에는 경제·군사적으로 치명적 타격이 될 수 있다. 확전을 우려하는 미국과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재보복을 그대로 두고 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란의 행동에 대한 대응과 대처 방법과 관련해 다음 단계를 이스라엘과 협의할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보복 계획에 적극 관여할 뜻을 드러낸 셈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란에 엄중한 후과가 있을 것임을 분명히 해왔으며, 이를 위해 이스라엘과 협력하겠다”며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도 재확인했다.

힌편 이날 공습이 큰 피해를 내지 않은 것을 놓고 이란이 탄도미사일만 사용해 방공 요격의 난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드론과 순항·탄도미사일을 섞어 날리면 각각의 속도와 궤적이 달라 요격이 더 복잡해진다. ‘이란이 미리 공습 사실을 알려준 덕분’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로이터는 “이란 정부가 러시아에 공습 계획을 미리 알렸다”고 전했다. 미국도 공격 직전 외교 채널을 통해 이란에서 경고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공습 때도 이란은 비슷한 의심을 받았으나 이를 극구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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