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필리핀,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원전·방산 등 전방위 협력 강화"
[서울=뉴스핌] 이영태 선임기자 = 필리핀을 국방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7일(현지시각) 페르난디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수교 75주년을 기념해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높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마닐라 소재 말라카낭궁에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1949년 양국 수교 이래 정상 차원의 공동 문건 채택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뉴스핌] 윤석열 대통령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자카르타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한-필리핀 정상회담을 마친 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알프레도 에스피노사 파스쿠알 필리핀 통상산업부 장관의 자유무역협정(FTA) 서명식을 지켜보며 박수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2023.09.07 [email protected] |
공동선언은 양국이 한국전쟁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 '혈맹'임을 강조하고 '전략적 동반자'로서 국방·안보, 경제·개발, 무역·투자, 기후변화 ·에너지, 해양, 교류협력, 지역·국제 등 분야 협력 발전 방안을 담았다.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마르코스 대통령과 공동언론발표에 나서 "저와 마르코스 대통령은 양국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해 한-필리핀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말했다.
양 정상은 관계 격상에 맞춰 안보협력을 강화키로 했다. 필리핀 군 현대화 3단계 사업 참여와 해상 초국가범죄 대응 등 해양협력, 남중국해상 중국과의 충돌에 대한 대응 협력 등이다.
윤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필리핀의 군 현대화 3단계 사업에 한국이 적극 참여키로 했고, 해양협력 MOU(업무협약)를 통해 해상 초국가범죄 대응·정보 교환·수색구조 같은 해양안보 협력도 강화키로 했다"며 "역내 핵심 해상교통로인 남중국해의 평화·안정·안전의 중요성에 공감했다. 양국은 남중국해상 규칙 기반 해양질서 확립과 국제법 원칙에 따른 항행·상공비행의 자유를 위해 계속 협력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양 정상은 이날 회담에서 1986년 중단된 필리핀 '바탄 원전' 건설 재개 타당성 조사를 위한 MOU(업무협약)가 이번 방문 계기에 체결된 것을 환영하고, 양국 간 원전 협력을 본격화해 나가기로 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장기 휴지 상태인 바탄 원전의 건설 재개와 관련해 경제성과 안전성 등 사업 추진의 타당성을 조사할 예정이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한국의 무탄소 에너지(CEF) 이니셔티브, 재생에너지원 촉진, 수소 개발, 친환경 탄소 포집·활용·저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한국이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에 이어, 올해 체코 신규원전 건설 사업에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만큼 필리핀과 최적의 원전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원전과 관련해 한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를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대통령실은 한국의 바탄 원전 건설 재개 타당성 조사 참여는 원전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필리핀의 향후 신규 원전 건설 참여에 한수원 등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필리핀과의 원전 협력이 중동과 유럽에 이어 동남아 원전 수출의 교두보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두 정상은 필리핀의 대형 인프라 사업에 한국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양 정상은 한국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를 활용해 '라구나 호수 순환도로'와 'PGN 해상교량' 건설 사업을 진행하기로 한 것을 환영하고, 이 협력이 향후 필리핀의 인프라 확충 사업에 대한 한국 기업의 참여를 더욱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데 공감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한국 기업들이 '비탄-카비테 해상교량 사업'과 같은 대형 인프라 사업에 참여해 필리핀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양국 정상은 또 한-필리핀 FTA(자유무역협정)를 바탕으로 무역과 투자를 확대하고, 새로운 협력 분야에서 경제 교류를 강화하기로 했다. 제조업, 핵심 원자재 가공, 우주 경제, 기후변화, 청정에너지 전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 보완성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적 기회를 식별하고 활용하기로 했다.
국방·안보협력 방안도 논의됐다. 두 정상은 양자 및 다자 연합훈련과 교육·훈련에 참여하면서 분쟁의 예방과 해결, 예방외교 및 갈등 관리를 위한 노력을 증진하기로 했다. 해양안보 MOU를 토대로 해상 초국가범죄 대응, 수색구조, 정보 교환 등 해양안보 분야 협력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방산 분야에서의 특별한 협력관계도 지속적으로 강화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방산 분야에서 필리핀의 군 현대화 사업에 한국의 참여가 확대돼 양국 간 방산 협력이 증진되길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양국 간에는 그동안 원양 경비함, 초계함, FA50 경전투기 등 방산 수출이 이뤄졌으며, 필리핀은 3단계 현대화 추진 사업과 관련해 한국의 주요 방산 무기 체계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및 국제 무대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협력 강화에도 뜻을 모았다. 두 정상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공동의 지지를 강조하고, 최근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와 핵무기 사용 가능성 언급을 규탄하며, 북한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준수를 촉구했다.
특히 북한과 러시아의 불법적인 군사협력을 용인할 수 없다는 데 공감하고, 이에 관해 국제사회와 더욱 긴밀히 공조해 나가기로 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증진을 위한 한국의 노력을 환영하며 '담대한 구상'과 '8·15 통일 독트린'에 대한 지지 입장도 밝혔다.
두 정상은 남중국해 문제에 관해 평화와 번영을 저해하는 행동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고 평화, 안정, 안전의 중요성에 공감하며 규칙에 기반한 해양질서 확립과 국제법 원칙에 따른 항행과 상공비행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계속 협력하기로 했다.
두 정상은 상대국의 관할권 내 상당수의 국민과 다문화 가정이 거주하는 점에 주목하면서 양국 국민의 안전과 안녕을 보장할 수 있도록 협력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고용허가제 안정적 운용,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의 성공적 추진 등을 통해 고용 협력을 지속 확대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