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역사상 최악의 재정 적자 상태"… 기업·부유층 세금 인상 추진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심각한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프랑스가 기업과 부유층을 상대로 한 세금 인상을 준비하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올해 프랑스 정부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5.6%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당초 프랑스 정부가 목표로 했던 5.1%를 훌쩍 웃도는 수치이다. 작년에도 적자 규모는 GDP의 5.5%였다.
프랑스의 국가부채와 재정적자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국가 중 2~3위에 올라 있을 정도로 위중한 상황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14일 파리올림픽 출전 선수단에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여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앙투안 아르망(33) 신임 재무장관은 이날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에서 "지금 프랑스는 역사상 최악의 적자 상태"라면서 "과감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부유한 계층과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세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집권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경제 성장과 투자 확대, 세금 감면 등을 핵심 국가 전략으로 채택했다. 그는 법인세율을 33%에서 25%로 낮추고 투자 소득에 대해선 30% 정액세만 내도록 했다. 130만 유로(약 19억4000만원) 이상의 부동산 자산에 대해 매기던 재산세도 낮췄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증한 정부 지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정부의 빚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7P)는 지난 6월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강등했다. 2013년 AA+에서 AA로 하향 조정한 뒤 11년 만이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마크롱의 전략은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고 실업률을 낮추는데는 성과를 거뒀다"면서 "하지만 재정 지출에 대한 규율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이는 결국 재정적자 확대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현재 프랑스의 상태는 유럽에서도 최악 수준이다. 뉴욕타임스는 "프랑스의 국가부채는 GDP의 110%가 넘으며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이어 유로존 국가 중 세 번째"라고 했다. 재정적자는 이탈리아에 이어 유로존에서 두 번째이다. 매년 약 800억 유로(약 120조원)를 국가부채에 대한 이자로 내고 있다.
경제계에서는 일단 정부의 정책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프랑스 최대 경제단체인 경제인연합회(Medef·메데프)의 파트리크 마르탱 회장은 "우리는 공공 재정 상태가 매우 심각하고 정치적 상황도 불안정하다는 점을 이해한다"면서 "두 가지 조건만 전제로 한다면 기업 증세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조건은 첫째 정부가 공공 지출을 줄이기 위해 기업보다 더 노력해야 하고 둘째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지장을 주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마크롱 정부의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들은 이날 고객에게 보낸 메모에서 "프랑스의 세금 부담은 이미 동료 국가들 중 최고 수준"이라며 "더 이상 인상할 여지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 정책은 정부 지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치우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프랑수아 빌레로이 드 갈라우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도 최근 "재정적자의 4분의 3은 정부 지출을 줄여서 메우고 나머지는 새로운 세금으로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미셸 바르니에 총리가 이끄는 새 내각이 유럽연합(EU)의 재정준칙을 지키려면 향후 몇 년 동안 1100억 유로(약 164조원)를 절감해야 한다"면서 "그 중 많은 부분은 정부 지출 삭감의 형태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EU 재정준칙은 모든 회원국이 재정적자는 GDP 대비 3% 이내, 국가부채는 60% 이내로 유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