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단호한 공권력과 시민의식이 불법 시위 잠재웠다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단호한 공권력과 시민들의 자발적 맞대응이 열흘 가까이 영국 전역을 뒤흔들었던 극우 세력 중심의 반(反)이민 폭력 시위를 잠재웠다. 정치권도 여야 모두 폭력 시위 반대와 강력한 경찰력 행사를 지지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8일(현지 시간) BBC와 가디언,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전날 영국 전역에서 열릴 것으로 예상됐던 반이민 시위가 거의 대부분 무산됐다. 경찰은 "몇 건의 사소한 발생 사건을 제외하고는 (수요일) 저녁이 순조롭게 지나갔다"고 밝혔다. 마크 로울리 런던경찰청장은 "시민과 경찰의 단결된 힘이 극우 폭동의 도전을 패퇴시켰다"고 말했다.지
지난 4일(현지 시간) 영국 로테르담에서 폭력 시위대가 영국 경찰과 맞서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영국 사회는 수요일 저녁을 앞두고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찰은 폭동과 사회 혼란을 노리는 시위대가 전국 30여곳을 휩쓸 것이라는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전국 100여 곳에서 극렬 시위가 열릴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일단 시위가 시작되면 폭력과 방화, 약탈 행위가 난무하고 인명 피해까지 발생할 가능성도 있었다.
실제로 지난달 29일 영국 중부 도시 사우스포트에서 어린이 세 명의 목숨을 앗아간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 이후 영국 전역은 불법 폭력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범인이 무슬림 이민자라는 거짓 뉴스가 소셜미디어 등에서 빠르게 퍼졌다.
영국 정부가 범인은 영국 태생으로 아프리카 르완다 출신의 기독교 신자 부모 슬하에서 자랐다고 발표를 했지만, 시위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전국으로 더욱 확산했다. 난민단체 건물 창문에 돌이 날아들었고, 차량 전복과 방화가 잇따랐다. 시위대는 경찰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8일간 체포된 사람은 430명, 기소된 사람은 140명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극우 세력은 가짜 뉴스를 더욱 퍼뜨리며 수요일 저녁에 대대적인 시위를 예고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장면들이 속출했다. 리버풀과 브라이튼, 브리스톨, 뉴캐슬, 런던 등 전국 곳곳에서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시민들 수천 명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들은 난민단체나 자선변호사 사무실 등에 모여 폭력 시위대의 공격을 원천 차단했다.
남부 해안도시 브라이튼에서는 시민 2000여명이 모여 카니발 축제 같은 장면을 연출하며 인종차별·폭력시위 반대를 주장하는 맞불집회를 열었다. 현장에서는 경찰이 자선변호사 사무실에 접근하려던 극우 시위자 4명을 격리시켰다. 시민들은 "다운스(국립공원)에서 바다까지, 파시스트에서 자유로운 브라이튼"을 외쳤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지난 며칠 동안 가장 격렬한 폭동에 시달렸던 리버풀의 경우, 한 자선단체가 극우 세력의 표적이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이날 저녁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시민 수백명이 이 단체를 보호하기 위해 모였고, 작은 충돌도 발생하지 않았다. 평화 시위대는 오후 9시30분쯤 해산했다. 브리스톨에서는 경찰 차량에 돌을 던진 용의자 한 명이 체포됐다.
정부와 경찰, 법원은 불법에 단호하게 대응했다. 정부는 폭력 시위 엄단 방침을 거듭 발표하고 실제로 행동에 옮겼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불법 시위를 일삼는 폭도는 신속한 검거와 중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극렬 시위자는 현장에서 즉각 검거했다. 경찰은 수요일 저녁을 앞두고는 전국에 6000여명의 추가 병력을 배치, 시위 차단에 주력했다.
법원은 신속한 재판을 통해 불법 시위 가담자에게 무거운 형을 내렸다. 7일 리버풀 형사법원은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3명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특히 경찰 얼굴을 때린 범인은 징역 3년형을 받았다. 법원은 8일에도 43세와 69세 시위 가담자에게 징역 32개월을 선고했다.
정치권은 한목소리를 냈다. 집권여당인 노동당 뿐 아니라 제1야당인 보수당의 주요 인사들도 폭력 시위에 반대한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리시 수낙 전 총리를 비롯해 차기 보수당 대표 도전자들은 "폭력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폭도들은 반드시 엄중한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