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S공포'..."빅테크·채권 줄이고 금·원자재 늘려라"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미국의 경제 성장이 빠르게 둔화하는 동시에 높은 물가가 계속되는 스태그플레이션 리스크가 날로 커지면서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전망이 뒤엉키고 있다.
연초만 해도 적당히 견실한 성장 흐름 속에 물가를 점차 낮출 수 있다는 기대에 연 3차례 금리 인하가 예상됐고, 투자자들 역시 이에 발맞춰 위험 자산 선호 심리를 빠르게 확대했다.
하지만 1분기가 지나고 두 지표 모두 예상을 빗나가면서 시장에서는 연내 인하 무산 가능성까지 거론되기 시작했고, 높은 금리 수준이 지속될 가능성에 대비해 투자 전략을 변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GDP(막대그래프) 성장률과 PCE 물가(파란선) 추이 [사진=미 상무부경제분석국/스태티스타 재인용] 2024.05.03 [email protected] |
◆ 파월 일축에도 짙어지는 'S의 그림자'
지난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끝나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의 신호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미국의 성장 둔화가 이미 지표로 확인됐고, 물가 역시 연준 목표치로 언제쯤 회귀할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월가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쉽사리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 상무부가 4월25일(현지시각) 발표한 1분기 경제 성장률은 1.6%를 기록해 시장 예상치인 2%대 중반에 크게 못 미쳤고,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는 연율 기준 3.7% 뛴 것으로 나타났다. 헤드라인 물가 지표 역시 3.4% 상승해 전년 동기 1.8%에서 큰 폭으로 상회했다. 뒤이어 발표된 3월 근원 PCE도 전년비 2.8%로 예상치 2.6%를 웃돌았다.
또 지난해 미국 경제 성장을 견인했던 소비 증가세는 올 들어 둔화 중이며, 낮아진 가계 저축률이 시사하듯 앞으로 소비는 더 위축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최고경영자(CEO)는 4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월가가 바라는 대로 인플레이션이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국 경제의 연착륙 가능성이 월가의 기대보다 훨씬 낮다고 주장했다.
CNN도 1970년대 석유파동에 따른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중이라면서, 2년래 최저치를 기록한 성장률과 1년래 최고로 오른 인플레이션 지표에 더해 지정학 긴장 고조에 따른 유가 상승 압력까지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저성장 고물가 상황이 장기화될 것 같다는 불안감은 금리 전망에서도 잘 드러난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5월 3일 현재 연방기금(FF) 금리 선물 시장에서는 현재 연 5.25~5.50%인 기준금리가 9월 25bp 단 1회만 인하되고 남은 기간 내내 동결될 가능성을 가장 높게 점치고 있다.
피치의 올루 소놀라 미국 경제 헤드는 GDP 발표 후 "성장은 계속 서서히 둔화되지만 인플레이션이 다시 잘못된 방향으로 강하게 상승한다면 2024년 연준의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는 점점 더 멀어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스태그플레이션 때 금 수익률이 가장 높은 모습. [사진=블룸버그/WGC] 2024.05.03 [email protected] |
◆ 금 등 상품 투자가 유리
스태그플레이션 문제는 중앙은행이 해결하기 까다로운 문제일 뿐만 아니라 투자자에게도 큰 부담이다. 저성장과 높은 금리가 지속되면 주식 시장이 타격을 받고, 높은 인플레이션이 이어지면 채권 시장 가치가 떨어져 수익원이 될만한 자산을 찾는 일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월가 전문가들은 일단 고금리 상황이 지속될 것이란 전제 하에 투자 전략을 세워야 한다면서, 고금리에 취약한 빅테크 주식들이나 미국채 투자는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월가에서 채권왕으로 불리는 빌 그로스 핌코 공동 설립자는 최근 자신의 엑스(구 트위터)에 미국채 10년물 금리가 올해 최고치 경신 후 4.75% 수준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서 "국채 가격(금리와 반대)이 급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채권을 보유할 이유가 없고, 주식 투자자들의 경우에는 당분간 가치주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이나 원유 같은 실물자산을 추천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경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미국채나 금과 같은 안전자산 인기가 높아지는데, 지금처럼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는 미국채 기대수익률이 제한돼 상대적으로 금 매력이 커진다.
지금보다 심각한 경기 침체와 높은 인플레이션이 결합됐던 과거 1970년대의 경우에도 뒤이은 10년간 금과 은, 원유 같은 원자재의 수익률이 미국채나 주식, 주택 시장 투자 수익률을 대폭 앞지른 바 있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투자 전략이 유리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블룸버그 데이터에 따르면 1973년 이후 스태그플레이션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것은 금으로 32.2%를 기록했고, 같은 기간 미국채는 9.6%, 증시는 마이너스 11.6%를 기록했다.
투자전략가 린 알덴은 수익률이 인플레 수준을 넘지 못하는 현금이나 채권은 피해야 하며, 인플레가 지금처럼 높을 때는 주식 투자도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대신 원유나 구리 같은 산업 원자재는 인플레 환경에서 큰 수익을 안겨줄 수 있으며, 물가가 높을 때는 공급도 부족해져 가격이 상승 지지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올해 상품 시장은 강달러 상황에서도 강력한 랠리를 연출 중이며, 블룸버그 상품지수에 따르면 구리나 아연, 알루미늄 등 기초금속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자산운용사 리버모어 파트너스는 원유와 금, 그 밖에 실물 자산을 매입하는 전략이 스태그플레이션 리스크에 대응하는 데 효과적이라면서,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시 상황 악화도 이들 자산의 기대 수익률을 높인다고 주장했다.
크리딧스위스는 이어북(Yearbook)에서 달러를 활용한 상품 투자가 장기적으로는 연 6.5%의 수익을 안겨줘 미 증시 수익률 5.9%보다 높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