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보좌관 "비핵화 중간단계 고려" 언급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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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미 백악관 고위 당국자가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서 중간단계 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는 언급을 해 눈길을 끌고 있다. 비핵화 완료 이전에 북한이 '위협 감소' 조치를 이행하면 상응하는 보상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미라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대양주 담당 선임보좌관은 4일 중앙일보와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공동주최한 포럼에서 "미국의 목표는 여전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이지만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서 역내와 세계가 보다 안전해질 수 있다면 중간 단계(interim steps )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미국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고 나오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상정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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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8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발사 장면 [사진=조선중앙통신]

하지만 미국이 대통령선거 국면에 들어간 상태여서 현 시점에서 미국이 북한과 대화 전략을 세운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더욱이 랩-후퍼 보좌관의 발언은 미국이 북핵협상 30년 역사에서 일관되게 유지했던 협상 패턴이어서 새로운 구상이라고 볼 수 없다.

중간단계 조치란 그 자체를 협상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비핵화라는 최종목표로 가기 위한 단계를 말한다. 포괄적 접근이든 단계적 접근이든 이같은 단계를 거치는 이행 방식은 피할 수 없다. 차를 후진시키려면 일단 정지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실제로 미국은 지금까지 북핵 협상에서 모든 핵활동과 위협 행위를 중단하는 것을 전제로 논의를 시작하는 방식을 취했다. 또 협상의 진전, 즉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왔다.

최초의 북·미 합의인 1994년 제네바기본합의는 북한의 핵활동을 동결하고 10년 이상 걸리는 유예기간을 둔 뒤에 특별사찰을 통해 비밀 핵개발 의혹을 규명하는 최종 목표를 다루도록 설계됐다.

2005년 9·19 공동선언에 따른 2·13 합의에서도 먼저 북한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핵시설 신고서를 제출받은 뒤 이를 기초로 핵폐기에 착수하는 단계적 접근법을 취했다. 제네바 합의와 2·13 합의 모두 중간 단계에 북한에 중유를 제공하는 보상이 약속돼 있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2년의 2·29 합의 역시 인도적 식량지원과 핵활동 중단을 먼저 교환한 뒤 대화를 시작해 본격적인 비핵화 협상을 진행하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정치적 흥행'을 위해 즉흥적으로 북·미 대화를 진행하면서 이같은 패턴을 따르지 않고 싱가포르 북·미 정상합의를 했다. 그러나 뒤늦게 싱가포르 합의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기존의 협상 패턴으로 돌아가면서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은 결렬됐다. 

당시 미국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재정비'한 협상 전략은 비핵화를 최종목표로 분명하게 설정한 뒤 이를 이행하기 위한 로드맵을 작성하고 영변 핵단지를 포함한 핵심 시설을 단계적으로 폐기해 나간다는 것이었지만 북한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처럼 지금까지의 북·미 대화는 최종목표를 설정하고 이행 과정에서 여러개의 중간 단계를 스텝 바이 스텝으로 거치면서 협상을 진전시키는 구조였다. 랩-후버 보좌관의 발언은 이 틀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므로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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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현재 북한 핵문제에서 과거와 달라진 점은 북한이 핵개발 단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핵무장을 사실상 완성했다는 점, 그리고 북한이 이제 더 이상 비핵화를 논의하는 대화에는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북한이 지금과 같은 입장을 고수한다면 비핵화를 협상의 최종목표로 설정하는 북·미 대화가 이뤄질 수 없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더라도 북·미 대화가 재개되기 어려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뒤 비핵화를 최종 목표로 분명히 설정하지 않은 채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려 한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북핵 문제를 다뤘던 외교관 출신의 전직 고위 관료는 "만약 미국이 북한을 대화로 유도하기 위해 비핵화를 최종목표로 분명하게 설정하지 않고 대화를 시작한다면 상호 위협감소를 논의하는 '군축협상'이 된다"면서 "이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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