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 동성애자 총리 인사가 파격? 프랑스에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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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의 후임으로 가브리엘 아탈 현 교육부 장관을 임명했다.

올해로 34세인 아탈 신임 총리는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총리이자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힌 최초의 총리다.

국내외 언론에서는 '동성애자'에 초점을 두고 파격적 인사라고 평가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아니다. 프랑스 일간 르 몽드, 국제 방송 프랑스24 등은 최연소 총리라고만 헤드라인을 뽑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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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신임 총리가 9일(현지시간)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로부터 총리직을 이양받는 행사에 참석한 모습. [사진=로이터 뉴스핌]

◆ 소수가 아닌 프랑스의 성소수자

프랑스 국민 10명 중 1명이 성소수자(LGBT)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1년 7월 기준 프랑스의 성소수자 인구 비중은 최소 9%다. ▲이성애자(89%) ▲양성애자(4%) ▲동성애자(3%) ▲범성애자 및 무성애자(2%) 순이다. 나머지 2%는 제시된 분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중이다. 18~34세 프랑스 남성의 8%, 여성 12%가 동성과 연애 경험이 있다는 지난 2021년 조사 결과도 있다.

프랑스는 2013년 동성혼을 합법화한 국가다. 전 세계에서 13번째로 동성혼을 인정한 국가이며, 동성애자 권리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 유럽에서 최고 수준이다. 퓨리서치센터의 지난 2017년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73%가 동성혼에 찬성했다. 프랑스의 수도 파리의 경우 서방 언론에서 '세계에서 가장 게이들이 자유로운 도시'로 평가받는다.

여기에는 사회적 요인과 역사적 배경이 있다. 헌법 제1조에 명시된 프랑스식 세속주의 '라이시떼'(laïcité)와 관용 정신 '톨레랑스'(tolérance)가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반감은 주로 종교적 이유에서 비롯되는데 라이시떼는 사회의 풍습, 관습이 종교나 종교적인 믿음과 분리되는 것을 뜻한다. 정교분리 사상이자 출신, 인종, 종교에 따른 차별 없이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한다는 국민 정서를 반영한 게 라이시떼다. 나와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너그럽게 이해하는 프랑스의 범국민적 톨레랑스 정신도 성소수자 포용을 가능케 했다.

저출산 문제 대책으로 우리나라도 주목하는 프랑스의 등록 동거혼 제도인 '시민연대협약(PACS·Pacte civil de la solidarite)'(PACS)은 동거하는 남녀뿐만 아니라 동성 커플에게도 가족 지위를 인정해 법적·복지 혜택을 제공한다. 동성혼이 합법화된 2013년부터 프랑스에서는 동성 커플의 아이 입양도 합법이다.

프랑스가 성소수자에게 관대하지 않았던 시절도 있다. LGBT 탄압은 프랑스 혁명 전 역사에서 빈번히 나온다. 그러다 프랑스 혁명 이후인 1791년 개인의 사적인 행위들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형법에 도입했다. 사회적 금기로 여겨졌던 동성애가 국가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이는 동성간 성적 행위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한 서방 최초의 형법 규정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다 1940년 나치 독일이 프랑스 북동부 로렌(Lorraine)과 동북부 알자스(Alsace) 레지옹 (région·지방 행정 구역)을 병합했을 당시 LGBT는 유대인과 더불어 박해 대상이었다. 프랑스 국민에게 있어 뼈아프고, 되풀이돼서는 안 될 역사다.

◆ 유럽의회 선거 앞두고 '자충수' 우려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아탈 총리 임명은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둔 마크롱 대통령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럽의회는 유럽연합(EU)에서 회원국들 정상들의 모임인 유럽이사회와 함께 법률을 제정하고 예산을 수립하는 입법부로 5년마다 선거가 치러진다. 선거는 각 회원국 국민들에 의해 직접 선출된다. 올해 선거로 선출될 의석은 705석. 선호투표제를 채택한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대다수가 비례대표제로 유럽의회 의원이 탄생한다. 프랑스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문제는 높은 인플레이션과 지난해 연금개혁 강행으로 곤두박질친 현재 마크롱의 지지율이다. 지난해 초 30% 후반이던 그의 지지율은 그해 3월 연금개혁 강행에 20% 후반까지 급락했으며 최근 30% 턱걸이를 기록 중이다.

여기에 최근 유럽의회 여론조사를 보면 집권 2기가 달린 지난 2022년 대선에서 마크롱과 경쟁한 마린 르펜이 부대표로 있는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이 마크롱의 중도 르네상스당을 10%포인트(p) 이상 앞선다. 유럽의회 선거를 5개월 앞두고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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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현지시간) 자크 들로르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의 장례식에 참석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비록 마크롱 대통령은 3연임이 불가해 오는 2027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지만 유럽의회 의석을 극우 정당이 채우게 둘 순 없다. 유럽의회 의원들의 고국 내 정당은 각기 다르지만, 이들은 이념과 정책 방향성에 맞게 유럽의회의 정당격인 정치그룹으로 분류된다. 현재 중도 우파 유럽 인민당 그룹(EPP), 중도 좌파 사회민주진보동맹(S&D), 중도 리뉴 유럽(RE)이 705석 중 420석을 차지하고 있어 중도파가 대세다.

만일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RN당 후보가 대거 선출되면 극우 정치그룹으로 프랑스 의원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 2027년 대선에서 마크롱의 중도 르네상스당 후보가 선출돼도 유럽의회에서는 극우 목소리가 크기 때문에 프랑스 정부의 EU 대외 정책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 극우 RN당 대표 향한 견제구 

한편 마크롱의 아탈 총리 임명은 극우 RN당의 조던 바델라 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도 많다. 바델라는 지난 2022년 대선이 끝나고 르펜 후임으로 대표직에 올랐다.

바델라 대표는 올해 28세로 프랑스 국민들이 가장 주목하는 '라이징 스타'다. 지난해 10월 프랑스 일간 레제코(LesEchos)는 여론조사 결과 바델라 대표 지지율 28%로 '인기 정치인 1위'로 선정했고 지난달 중순 현지 수드 라디오 여론조사에서는 바델라 대표가 44%로, 르펜 부대표(43%)를 꺾고 극우 정치인 지지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프랑스 언론들은 아직 3년이나 남은 다음 대선 유력 대통령 후보로 바델라 대표를 거론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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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2월 5일(현지시간) 선거 유세 현장에서 연설하는 조던 바델라 프랑스 극우 국민연합(RN)당 대표의 모습. [사진=블룸버그]

아탈 신임 총리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지난달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탈 당시 교육부 장관의 지지율은 40%로 1위를 기록했다. 바델라 RN당 대표(36%)보다도 4%p 높았다.

반면 해당 조사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27%, 비호감도는 무려 68%를 기록했다. 바델라 대표의 점차 커지는 인기에 위협을 느낀 마크롱이 최연소 총리란 견제구를 날려 자신 역시 처음 취임했을 당시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었음을 대중에게 상기시키는 효과도 기대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밖에 아탈 신임 총리는 유대인 집안에서 자랐는데 영국의 유대인정책리서치연구소(jpr)에 따르면 프랑스 내 유대인 인구는 약 65만 명으로 추산된다. 국민 100명당 1명은 유대인이란 의미여서 절대 적지 않은 유권층이다.

아탈 총리는 이전부터 마크롱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다. 일간 르 몽드는 "마크롱의 충신이 눈부신 승진을 했다"고 보도했고 야권에서는 그를 필요하면 언제든지 갖다가 쓸 수 있는 마크롱의 '냅킨 홀더'라고 부를 정도다.

마크롱의 '아탈 카드'가 그의 지지율에 변화를 줄지 관심이다. 나아가 오는 6월 6일부터 9일까지 치러질 유럽의회 선거 결과에도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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