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비만 치료제 삭센다, 미용 목적 남용 막아야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미국의 토크쇼 여왕 오프라 윈프리가 올해 40㎏ 체중 감량을 해 대중들 앞에 나타나 화제였다. 지난 9월 자신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방송에서 "약을 사용하는 것은 가장 쉬운 방법"이라며 자신은 약물 없이 오로지 식단과 운동만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듯이 말했지만 최근 인터뷰에서 실은 약 힘을 빌린 것이 맞다고 시인했다.
매일 오후 4시 전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충분한 수분 섭취와 함께 운동하는 생활습관 교정에 체중감량 약 복용을 추가했다. 그는 "체중을 관리하기 위해 의학적으로 승인된 처방이 있다는 사실은 (과체중 혹은 비만을) 숨기거나 놀림 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준다"며 "비만은 질병이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뇌(호르몬)에 관한 것"이란 신조를 드러냈다.
대중은 생활습관 개선 등 건강한 다이어트 방식을 홍보해온 그가 의약품에 의존했단 사실에 다소 배신감마저 들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른바 '다이어트 의약품' 열풍은 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었다. 킴 카다시안 등 유명 셀럽들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 유명인이 인슐린 주사제로 10㎏ 이상 체중을 감량했단 소식이 전해지며 틱톡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할리우드 다이어트' '삭센다 다이어트' '오젬픽 다이어트' 등 해시태그로 간증글이 확산했고 미국과 유럽 일부 지역에서 약물 품귀 현상으로 이어졌다. 당뇨병 환자이거나 비만 환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용 목적의 다이어트를 원하는 이들이 웃돈을 줘 '오프라벨'(off-label) 처방을 받은 결과다.
최원진 국제부 기자 |
실제로 이들 의약품은 체중감량에 효과가 있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의 비만 환자 처방 주사제 위고비, 삭센다와 2형 당뇨 환자용 주사제 오젬픽의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는 음식 섭취시 체내 인슐린 분비를 증가시키는 호르몬인 GLP-1과 유사한 작용을 하는 약물로, 위장 운동을 저하시켜 음식물 소화를 더디게 해 포만감을 늘리고 식욕은 떨어뜨린다.
비슷한 약물로 미국 일라이릴리의 당뇨 주사제 '몬자로'(성분명 티르제파티드)가 있는데 미 식품의약국(FDA)은 지난달에 몬자로와 같은 의약 성분을 비만 치료에 쓸 수 있도록 승인했다. 일라이릴리는 연말까지 성분 함량 등을 개량해 '젭바운드'란 브랜드명으로 비만 치료제를 출시할 예정이다.
비만 환자들을 위한 의약품 개발과 출시는 반가운 소식이다. 비만은 고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 등 각종 생활습관병의 주범이자 매년 전 세계적으로 그 인구가 증가하고 있어서다. 미국의 과체중 혹은 비만 인구는 70%에 달하며, 2035년에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과체중 또는 비만일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한편으론 의약품을 미용 목적의 다이어트에 남용되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국내에서 처방되고 있는 비만 치료제 삭센다가 한의원과 치과의원에서 처방이 이뤄지고 있단 정황이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떨까 궁금해서 한 비대면 진료 앱에 '다이어트 주사제'를 검색해 보니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단 의원들이 줄 잇는다. 개중에는 한의원도 있었다. 앱 내 커뮤니티에 올라온 "체질량지수(BMI)가 정상인데도 처방이 가능한가"란 취지의 질문에는 "처방이 가능하다" "최대한 빠른 진료 도와주겠다" "체중 관계없이 필요하다면 처방이 가능하다" 등의 답변이 달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국내에서 삭센다는 성인 환자에서 ▲체질량지수(BMI) 30 이상(BMI≥30 kg/m2) 또는 ▲체중 관련 동반 질환(고혈압, 제2형 당뇨병, 당뇨병 전단계, 이상지질혈증 등)을 최소 하나 이상 보유한 BMI 27 이상(BMI≥27 kg/m2)에게 처방되는 전문의약품이다.
온라인 다이어트 커뮤니티에 삭센다를 검색해보니 어디에서 처방을 잘 해주는지 정보를 공유한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실제 판매가 이뤄지는지는 불불명하지만 경구 비만 처방약 해외 구매 대행 사이트도 구글 검색 한 번에 찾을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삭센다 등 비만 치료제를 정상 체중의 성인이 미용 목적 다이어트제로 사용할 경우 득보단 실이 더 크다고 말한다. 메스꺼움과 구토 등 경미한 부작용부터 오남용의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장기 투여시 안전성 우려도 있다. 전문의약품 처방에 사각지대는 없는지 정부가 적극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