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상용' 대신 '공격용·방어용'으로 구분한 대통령실...우크라 무기지원 가시화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을 위한 병력 파견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용 무기 지원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살상용 무기 지원은 사실상 한·러 관계의 마지노선이라는 점에서 향후 상황 전개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국제사회의 압력 속에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용 무기 지원을 자제해 왔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22일 북·러 군사협력이 지나치다고 판단되면 살상용 무기 지원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가 끝난 뒤 브리핑을 통해 "북한의 러시아 파병 및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에 따른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며 이같은 방침을 공개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지난 8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차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원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4.08.27 [email protected] |
김 차장은 북한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촉구하면서 "좌시하지 않고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차장은 특히 "북·러 군사협력 진전 추이에 따라 '단계적 대응 조치'를 실행해 나가겠다"면서 "러·북 군사협력이 우리 안보의 중대한 위협을 가하는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에 대비해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를 종합 검토하고 이에 상응하는 조치들을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입장은 지난 6월 러시아와 북한이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을 맺고 사실상 군사동맹을 부활시켰을 때와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장호진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용 무기 지원과 관련, "러시아 측이 하기 나름"이라며 "(러시아가) 고도의 정밀 무기를 북한에 준다 그러면 우리가 더 이상 어떤 선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는 러시아가 북한에 어떤 반대급부를 제공하느냐가 살상용 무기 지원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이번 대통령실 발표도 '단계적 대응'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큰 틀에서는 향후 러시아가 북한에 핵·미사일 관련 첨단기술을 반대급부로 제공할 경우 우크라이나에 무기지원을 제한없이 할 수 있다는 기본적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날 대통령실 고위관계자 언급 중 주목되는 부분은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게 될 무기를 '살상용'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방어용과 공격용'으로 구분했다는 점이다. 이 관계자는 살상용이라는 표현이 '감정 개입 단어'라고 지적하면서 "모든 무기는 의도한 바에 따라 살상할 수 있고 파괴할 수도 있으므로 방어용·공격용으로 구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방어용 무기 지원을 고려할 수도 있고 또 한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마지막으로 공격용까지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기 체계에서 방어용과 공격용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할 정도로 경계가 모호하다. 러시아가 주목하고 있는 것도 한국이 살상용 무기를 제공하느냐 여부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황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무기 체계를 한국이 지원할 것인지 여부다.
예를 들어 한국이 대공·방공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해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는 제공권에 영향을 준다거나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용이하게 만드는 지뢰제거 장비를 제공할 경우 러시아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한국이 제공하는 '방어용 무기'로 러시아를 곤란에 빠뜨리게 되는 것이다.
한·러 관계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정부가 '방어용과 공격용'을 언급했다는 것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문제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변화로 보인다"면서 "한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준의 무기 제공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