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정권 교체...FT "韓방산 계약 무산될 수도"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지난 10월 총선에서 야권연합을 이끌어 8년 만에 정권 탈환에 성공한 폴란드의 도날트 프란치셰크 투스크 전 총리가 11일(현지시간) 신임 총리로 확정됐다.
야권연합에서 기존 정부가 체결한 계약들을 무효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어 한국 방산 업체들과 무기 계약도 영향이 있을 것이란 게 주요 외신들의 분석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날 폴란드 하원에서 실시된 투스크 총리 후보에 대한 찬반 투표에서 찬성 248표, 반대 201표로 그의 총리 지명이 확정됐다.
이는 이날 앞서 현 집권당인 '법과 정의당(PiS)' 소속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현 총리에 대한 신임 투표가 부결되자 진행된 투표였다.
11일(현지시간) 폴란드 하원에서 진행된 자신에 대한 신임 총리 후보 찬반 투표를 마치고 본 회의장을 떠나는 도날트 프란치셰크 투스크 전 총리의 모습. [사진=로이터 뉴스핌] |
투스크 총리는 2007~2014년 총리를 역임했고 2014년부터 5년간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을 맡은 인물이다.
그는 지명 확정 후 연설에서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겠다"고 선언, 전 정부와 다른 행보를 보이겠다고 예고했다.
정권 교체를 앞둔 지난 10일 시몬 호워브니아 하원의장은 현지 라디오 방송에 "PiS 정부가 10월 15일 이후 서명한 합의는 무효화될 수 있다. 총선 이후 PiS는 예산을 쓰지 않고 국가 관리만 해야 했다"고 말했다.
새 정부 국방장관 유력 후보인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아크카미시 폴란드농민당(PSL) 대표도 지난 9일 라디오 방송에 PiS 정부가 체결한 계약들이 "분석과 평가를 거칠 것"이라고 알렸다.
앞서 지난해 7월과 10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등 한국 방산업체로부터 K2 전차 1000대, K9 자주포 672문, 천무 288문 등을 구매하겠다는 기본 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이들 업체는 폴란드와 17조 원 규모의 '1차 실행계약'을 맺었다.
당장 문제가 될 수 있는 계약은 이달 4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폴란드 군비청과 체결한 3조 4000억 원 규모의 K-9 자주포 152문 등을 수출하는 내용의 '2차 실행계약'이다. 지난 10월 15일 이후에 체결된 계약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차 계약에서 폴란드와 K-2 전차 180대 수출을 확정한 뒤 820대 규모의 2차 계약을 남겨 둔 현대로템 역시 추가 계약 체결에 영향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차기 국방장관 후보의 발언에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현 국방장관은 10일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한국 계약의 검토는 해당 계약를 무효로 하겠단 것과 같다"라며 "그들이 한국과 체결한 계약을 취소한다면 우리의 안보를 약화시키고 우리를 실제 위험에 노출시킬 것이다. 러시아와의 전쟁은 공상과학 시나리오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현대로템 K2 전차 [사진=현대로템 제공] |
로이터는 호워브니아 의장의 PiS 정부 체결의 계약 무효화 발언을 전하며 한국산 무기 수입 계약이 검토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당시 한국 방산업체들이 폴란드에서 예상되는 정권 교체로 인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무기 거래가 위험에 처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폴란드는 지난 2015년 PiS로 정권이 교체되고 이듬해에 에어버스와 체결한 기존 무기 계약을 취소해 프랑스, 독일 등과 갈등을 빚은 전력이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폴란드 정부가 수십조 원에 달하는 계약을 감당할 수 있느냐다.
민족주의 성향 보수 정당인 PiS 정부의 사법 개혁으로 사법부 독립성을 저해해 EU의 공통가치인 법치주의를 훼손했단 이유로 EU는 폴란드에 대한 코로나19 회복 및 복원 기금(RRF) 354억 유로와 빈곤 지역의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한 결속기금(Cohesion Fund) 765억 유로를 동결하고 있다.
새 정부가 이전 정부의 계약 체결 건을 들여다보겠단 것도 결국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한 노력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투스크 총리는 동결된 EU 기금 해제와 EU와 관계 개선을 최우선 정책으로 두고 있다.
FT가 취재한 전문가들은 한국수력원자력이 폴란드 원전사업에도 협력하고 있는데, 만약 무기 계약 실행이 어려워지면 이는 국방 분야를 넘어 양국 관계에 그림자가 드리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