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한·미 금리차에도 돌아온 외국인…“환율은 지켜봐야”
외국인, 4월에 韓 주식 9억1000만달러 사들여
“반도체 업황 개선 전망 반영”
5월 초에도 외국인 자금 순유입
美긴축 종료·연착륙 기대감에 투심 개선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사상 최대인 1.75%포인트(p)로 벌어졌지만, 외국인 투자자금은 순유입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서 우려하던 외국인 자본 이탈 현상은 아직 나타나지 않는 모습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이 끝나간다는 기대감에 하반기 반도체 업황이 살아날 것이란 전망이 맞물리면서 외국인이 국내 주식과 채권을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1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외국인의 국내 증권투자자금은 32억5000만달러 순유입을 기록했다. 지난해 7월(37억달러) 이후 약 9개월 만에 최대치다.
주식 투자자금은 9억1000만달러 늘면서 한 달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지난달 삼성전자(65,200원 ▼ 200 -0.31%)가 공식 감산을 발표한 이후 반도체 업황이 개선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국내 주식을 사들였다”고 설명했다.
채권자금도 2개월째 순유입 흐름을 이어갔다. 지난달 외국인의 국내 채권 투자자금은 공공자금을 중심으로 23억3000만달러 증가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주요국이 달러 강세로 인한 자국 통화가치 방어에 나서느라 외환보유액이 줄면서 해외 채권투자 여력도 축소됐다”며 “최근에 달러 강세가 진정되면서 주요국 중앙은행 등의 해외 채권 투자 여력이 회복됐고, 우리나라에도 채권 자금이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채권자금 순유입 기조는 한·미 금리 격차가 확대된 이달 들어서도 지속되는 모습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16일까지 국내 주식 928억5600만원어치를 사들였다. 외국인 채권 자금도 같은 기간 1억9681만원 순유입됐다.
연준이 지난 3일(현지시각) 기준금리를 5.0~5.25%로 0.25%p 인상하면서 한국과 미국간 기준금리 역전폭은 기존 1.5%p에서 1.75%p로 벌어졌다. 일각에서는 한·미 금리 격차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확대되면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추가 하락할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과거 한·미 금리 역전 사례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금리 격차로 인한 외국인 자금 이탈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한·미간 금리가 역전된 시기는 1999년 6월~2001년 2월, 2005년 8월~2007년 8월, 2018년 3월~2020년 2월까지 총 세 번이다. 세 번의 금리 역전 기간 주식과 채권을 합친 외국인 자금은 순유입된 바 있다.
오히려 우리나라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관련 전망과 미국의 금리 인상 사이클(기조)이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신호가 한·미 금리 격차보다 외국인 투자자금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간 부진했던 반도체 업황은 2분기부터 회복 흐름을 보이고, 하반기 들어 반등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올해 중반부터 재고 조정이 마무리되면서 하반기부터 수요가 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이달 초 마지막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 끝나간다는 전망과 더불어 미국이 경기 침체 없이 인플레이션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위험자산 선호심리가 살아났다”며 “이로 인해 국내 주식시장, 채권시장에도 외국인 투자자금이 오히려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안성배 KIEP 국제거시금융실장도 “한국과 미국의 금리 격차 확대에 따른 불안 요소가 있지만, 아직 한국 자본시장에서 특별한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원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9%로 둔화됐음에도 불구하고 5월 중장기 기대인플레이션이 반등하는 등 물가 지표가 엇갈리면서 연내 조기 금리 인하 전망은 약해졌다. 여기에 은행권 불안까지 되살아나면서 지난주 달러화가 다시 강세로 돌아섰고, 이에 따라 원·달러 환율도 1330~1340원대로 올라섰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기점으로 종료될 여지가 커졌기 때문에 달러화는 연말까지 완만한 약세 기조를 이어갈 것”고 했다. 다만 그는 최근 원화 가치를 끌어내린 주된 요인으로 꼽히는 무역수지 적자 흐름과 이로 인한 경상수지 악화,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 제한으로 인한 위안화 약세 등으로 상반기까지는 환율이 1300~1350원 박스권에서 오르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