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판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왜 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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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오는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사라졌다. 민주·공화 양당이 각각 전당대회를 치르고 후보를 공식 선출한 가운데 두 당이 공개한 정강정책(party platform)에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 이른바 '2차 북핵위기'가 시작되고 핵 협상이 본격화된 이후 양당의 정강정책에서 비핵화 문제가 빠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주당이 지난 18일(현지시간) 공개한 92쪽의 정강정책은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대응하기 위한 동맹국과의 협력을 언급했지만, 북핵 문제의 최종 목표인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은 없다. 앞서 지난달 8일 공개된 공화당의 정강정책에도 북핵을 포함한 북한 문제가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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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로이터 뉴스핌]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전당대회 첫날 무대에 등장하고 있다. 2024.08.21

정강정책은 대선을 앞두고 각 당이 지향하는 정책적 지향점과 목표를 밝히는 문서다. 사실상 대선공약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핵 문제는 미 대선에서 항상 거론됐던 중요한 아젠다였다. 2004년 대선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치러진 모든 대선에서 양당은 정강정책을 통해 비핵화가 최종목표임을 분명히 밝혀왔다. 특히 공화당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를 빠짐없이 명시해왔다.

이번에 비핵화 언급이 사라진 이면에는 장기간 북핵 협상에 대한 피로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30여 년간 북한과 수많은 합의를 했으나 번번히 이행이 무산된 것에 대한 좌절감도 드러나 보인다.

하지만 정강정책에 북핵 문제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고 해도 한반도 비핵화가 미국의 대외정책 목표에서 지워졌다고 볼 수는 없다. 북한이 핵무장에 성공함에 따라 비핵화가 더욱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으로서는 비핵화를 포기할 수 없다. 북핵 협상에 오래 관여했던 관료 출신의 한 전문가는 "비핵화가 미국의 정책 순위에서 뒤로 밀릴 수는 있지만 미국의 비확산 정책이 유지되는 한 한반도 비핵화는 포기할 수 없는 과제"라고 지적했다.

미 대선에서 북핵 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북핵 문제에 대한 접근법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로 단기간에 비핵화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졌다. 이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는 '장기적 과제'가 됐다.

민주당은 앞서 2020년 대선 정강정책에서도 비핵화를 '장기적인 목표'로 규정하고 이를 위해 지속적이고 협력적인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고 명시한 바 있다. 비핵화를 직접적인 목표로 협상을 서두르기보다 동맹국과의 공조를 통해 대북 억제력을 강화하는 데 우선적으로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미 행정부 내에서 비핵화로 가는 연결고리로 '중간 단계(interim steps)'가 언급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파악할 수 있다.

각 당의 정강정책은 외교정책보다 대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국내적 이슈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선거에서는 경제·사회적 이슈가 압도적인 관심을 받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화당은 이번 정강정책의 분량을 16쪽으로 대폭 축소해 유권자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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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피서브 포럼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 대선 후보 지명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2024.08.21

공화당의 이번 정강정책에는 한반도 비핵화뿐 아니라 대만 관련 언급도 누락됐다. 4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공화당은 1979년 미·중 수교와 함께 대만과 단교했지만 이후 모든 대선 정강정책에서 대만 관계법과 대만의 자위권, 안보에 대한 약속 등을 강조해왔다.

중국 견제와 대만에 대한 지지는 미국 내에서 초당적 지지를 받는 문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정강정책에서 대만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관심이 떨어졌다거나 정책이 변했다고 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한반도 비핵화가 정강정책에서 누락됐다고 해서 한반도 정책 자체가 변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외교부 당국자는 20일 이 문제와 관련, "북한 비핵화를 위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계속 공조해 나갈 것"이라며 "미국의 정강정책은 국제 이슈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 아니므로 대선 이후 주요국과의 협의를 통해 구체화·가시화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차기 미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대선 이후 새 정부가 이 분야 전문가들로 진용을 갖추고 정책 검토를 거쳐 내년 상반기쯤 공개할 가능성이 높다. 북핵 문제에 정통한 전직 관료 출신 전문가는 "정부는 대선 이후 새 행정부와 긴밀히 접촉해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외교적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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