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반려동물이 내 자식이라는 MZ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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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자녀 계획이 없는 건 아닌데 금전적인 부분도 있고...잭스랑 제나 키우니까 내 새끼 같고, 가족이지 뭐."

2년 차 신혼인 대학 동기 K(32)에게 자녀 계획에 관해 물었다. 반려견 '잭스'와 반려묘 '제나'를 키우는 동기는 딩크(DINK, 자녀가 없는 맞벌이 부부)족은 아니지만 언제 자녀를 낳을지 기약이 없다. 전세살이 중이지만 꼭 내 집 장만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다.

"회사 진급이나 커리어도 고려하고 싶고 무엇보다 맞벌이인데 아이를 봐줄 시설에 맡기는 것도 다 돈이잖아. 남편 외벌이로는 생활 유지가 힘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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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진 국제부 기자

저출산의 요인이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아서뿐만 아니다. '현재 우리 부부의 소득 수준으로 한 아이를 양육할 수 있을까?' 미지의 영역이다.

맞벌이 부부의 육아휴직 기간을 1년에서 1년 6개월로 부부 합산 3년까지 확대하는 '모성보호 3법(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 개정안)'이 전날(26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지만, 근본적인 저출산 대책이라고 보긴 어렵다.

기존 육아휴직 기간이 짧아서, 정부의 출산 보조금과 혜택이 부족해서, 심지어 내 집이 없어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아니다. MZ세대는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다. 나 혼자 건사하기도 버거워 자발적으로 새 생명을 책임질 용기가 안 난다. 온라인상에는 "내 가난을 물려주기 싫다"는 반응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반려동물은 다르다. 자녀의 의식주(衣食住)와 사교육비는 도무지 감당 못 해도 반려동물을 위한 사료·간식·용품 정도는 살 수 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출산율 세계 꼴찌인 한국에서 반려견 유모차의 판매가 급증하면서 지난해 처음으로 아기 유모차 판매를 앞질렀다"고 집중 조명했다.

거리에 이른바 '개모차'를 보는 것은 흔한 풍경이고 전국적으로 반려동물 출입 가능 장소가 넘쳐난다. 덩달아 영유아나 어린이의 출입을 금지하는 '노 키즈 존'(no kids zone) 식당과 카페도 늘고 있다는 역설이다.

이러한 사회 현상에 대해 WSJ은 '한국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보다 반려동물과 함께하길 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MZ세대들도 부모가 되기보다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것을 선호한다. USA투데이가 반려견을 소유한 전국의 18~26세 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38%가 자녀 대신 반려견을 키우겠다고 응답했다. 이들 중 74%가 '양육 비용 부담'을 이유로 꼽았다.

현재 나의 소득 수준으론 자녀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은 없지만 나의 반려동물에게는 해줄 수 있는 게 많다. 미 시사 주간 뉴스위크에 따르면 미국인은 매년 평균 612.10달러(약 80만 8000원)를 반려동물을 위해 지출한다. 7명 중 한 명꼴로 일년에 1000달러 이상을 지출하는데, 양육비에 비하면 껌이다.

고급 반려견 유모차 브랜드 에어버기의 스페셜 에디션 개모차에 145만 원,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돌체앤가바나의 반려견 전용 100㎖ 용량 향수에 14만 원을 기꺼이 지불하는 이유다.

평소 잭스와 제나를 위한 지출은 아끼지 않는 K도 마찬가지다.

"자녀 계획에는 고려하고 준비해야 할 게 많잖아. 그런데 잭스와 제나는 지금 내 상태에서 충분히 돌볼 수 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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